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구치 타쿠야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도련님]]처럼 보이는 훤칠한 외모와 달리 상당히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다. 부모님이 [[도쿄]]의 한 대학을 다니면서 [[캠퍼스 커플]]로 만났기에 도쿄에서 태어났다. 아래로 1989년생의 [[여동생]]이 있다. 어릴 적, 가족과 [[도쿄]]를 떠나 [[이바라키현]] 히타치오미야시로 이사를 가게 되고 이곳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낸다.[* 에구치 본인은 [[도쿄]]에서의 어릴 적 기억은 희미하다며 자신을 [[이바라키현]] 출신이라고 늘 자칭한다.] 워낙 [[시골]]이다보니 여가생활을 보내려면 자전거를 타고 왕복 두 시간을 걸려 시내로 나갔어야 했다.[* 고등학생 때는 자전거로 통학하는데 각각 50분이 걸렸다고 한다. 이렇듯, 본가가 [[이바라키현]]에 있어서 나중에 은퇴를 하거나 쉬는 기간을 갖게 된다면 이바라키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.] 본인은 계속 부정했으나 동급생들에 의하면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고 한다. 사람 대하는 걸 좋아하고 [[리더십]]도 있었기에 2학년 때는 [[학생회장]]으로 선출되었을 정도. 원래는 가업을 잇거나 [[대학]]에 진학해 평범한 사회인이 되려 했지만 어릴 적부터 [[라디오]]로 [[밴드]]의 노래를 듣거나 문화 방송을 듣는 것을 즐겼던 그는,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,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밤에 [[라디오]]를 틀어놓고 공부를 하던 중 [[오노사카 마사야]]가 퍼스널리티를 맡은 심야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듣고 한참을 빠져들었다고 한다. 그가 [[성우]]라는 것을 안 뒤, '[[성우]]가 되면 라디오를 진행할 수 있구나'라고 생각하여 성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.[* 당시 나오는 게스트들의 만담이 재밌어서 성우가 되면 이런 재밌고 유쾌한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고.] [[성우]]가 되기까지 [[부모님]]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효시가 되어 [[고등학교]] 졸업 후, 부모님이 원하는 [[대학]]에 진학하기보다 [[도쿄]]에 위치한 [[사립학교]]인 [[전문학교(일본)|니혼코가쿠인 전문학교]]의 성우, 연극과에 진학한다.[* 오히려 부모님이 [[성우]]가 되는 것을 지지해줬다면 긴장이 풀어져서 [[상경]]하지도 성우가 되지도 못했을 거라고.] 이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예술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에 부모님은 등록금, 학비 등을 전혀 지원해주지 않았다. 그렇기에 학교에 다니는 2년 동안 [[신문]] 장학생을 하고 [[편의점 아르바이트]]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. 신문 배달로 인해 매일 같이 새벽 3시 반에 일어났으며 열이 39도가 넘는 날에도 독자들을 생각하여 신문 배달을 했다고 한다. 학교 생활과 석간 배달, 야간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가면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. 다음 날 배부할 신문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이었기에 매일 2~3시간밖에 못 자서 수면부족이었다고 한다.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2년 동안은 [[신문]]에 대한 기억밖에 없다고 할 정도. [[동급생]]들과 노는 것은 꿈도 못 꿨지만 같은 기숙사생들과는 잘 지냈다.[[http://www.girls-style.jp/interview/022/02sop01_gs.php|#]] 성우과 2학년 재학 중이던 [[2007년]]의 [[여름방학]],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해보니 막상 [[졸업]] 후에 할 것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된 에구치는 주요 성우 프로덕션인 [[81 프로듀스]]의 제 1회 <[[81 프로듀스#s-3|81 오디션]]> 개최 공고를 보게 된다.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성우들부터 학과에서 이름을 알린 선배들이 다니는 소속사였기에 순간 '이곳에 다니고 싶다'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오디션에 지원한다. 당시 여러 차례의 비공개 오디션과 세 차례에 걸친 공개 [[오디션]]으로 '''1,017:1'''의 막대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며 본격적으로 성우의 길에 들어섰다.[[http://blog81.neec.ac.jp/archives/50149746.html|#]][* 해당 년도 여성부문 합격자는 [[모리 유우코]]. 다만 모리 유우코는 양성소 등록은 하지 않았다. 당시 남성부문의 최후의 2인 중 [[시마자키 노부나가]]가 있었다고 한다.] 가족에게 우수상 수상과 [[양성소]] 합격 소식을 전하자 그제서야 [[부모님]]이 기뻐해주며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.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기숙사 생활을 그만두고 [[도쿄]]에 정착했고 주 6일은 학교, 주 1일은 [[양성소]]를 다니며 신문 배달 일까지 함께 병행했다. 결국 신체가 따라주지 않아 학교는 중퇴하고 양성소에 집중하기로 한다. 이후 양성소에서의 커리어를 순탄히 밟아, [[2008년]], [[81 프로듀스]]에 정식으로 입성하며 [[성우]]로서 데뷔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